Wednesday, July 18, 2012

골든 타임에서 발견한 나에 대한 불편한 진실

어제 예비군 후유증인지 아니면 최근 계속된 불면증 때문인지 오늘도 다섯 시쯤 일어났다. 사실 요새는 다섯 시면 환하다... 늘 그렇듯이 일어나 티비 시청을 하다가, 요새 하는 프로그램 중 재미있는 게 없나.. 뒤적 거리던 차에. 걸린 것이 골든 타임이라는 드라마.


재미있게 한참을 빠져서 보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글로 남긴다.


극 중에 이선균의 모습이 자꾸 밟혀서.



특히나 졸업을 앞둔 시즌에 즈음하여, 미래와 인생에 대해 고민이 다시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여.



만약 내가 의대를 갔다면 어땠을까. 치과 개업한 중학교 친구나 어디 대학 병원에 가 있는 친구들처럼 거기서도 선택이 많았겠지만, 지금처럼 인생이 다이나믹할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내가 아주 스마트 한 편은 아니니까, 어느 병원이든 갈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을 거고. 우리집이 의대 집안-로얄 패밀리로 등장하는-도 아니고, 그렇다고 병원 개원 할 만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렇다면, 결국 선택은 병원 개업하는 친구 도와주면서 일 좀 하다가 내가 돈이 충분히 생기면 나도 개원하고.. 뭐 이런.. 동네 의원 정도가 아니었을까.


지금 나이 쯤이면 아마 돈많은 친구와 동업하면서 여유있게 살 수도 있었을 것 같고.



딱 그렇게 사는게 극 중의 과거 이선균인 것 같다.



그러다 만난 교통사고. 사실 어쩌면 이선균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은 의사를 못하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냉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니. 아니, 어쩌면 반대로 가장 의사 체질인지도 모른다. 사고 현장에서의 담담한 어조, 냉철한 판단.



그게 참.. 요즘 나의 인생과 묘한 듀얼리티가 있다.



최근 나의 행보는 취직-구직에 뚜렷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뭐 졸업하면 다 그렇듯이.


박사 받고 갈 만한 직장으로서, 국내 대기업이나, 연구소, 학교 등이 지금은 내 관심 범위인데.. 대기업에 가면 몇 년은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10년 정도는..? 물론 그걸 대비해서 기본적인 어학 점수나 인간관계 등은 비교적 잘 준비된 편인 것 같다. 연구소나 학교는 사실, 실적도 그렇고, 어디 내세우기 쪽팔린 수준이라-물론 뭐 실력이 꿀린다거나 하는 이유라기보다 모셔갈 수준은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학계에 뿌리가 있는 집안도 아니고.. (뭐 선조 얘길 하자면, 서애 유성룡이 가문 출신이긴 하다만..) 결과적으로 현실에서 가장 가까운 답은 적당한 기업을 찾는 것 같다. 가정도 있고 딸도 있고 하다 보니,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돈도 많이 주고, 개인 시간도 넘쳐 나고, 가능하면 길게 다닐 수 있는 그런 직장이 어디 없나.. 매일 살펴보는 중이다.



만약 적당한 기업에 취직을 한다면, 예를 들어 삼성 전자, 집도 차도 곧 생기게 될 것이다. 아이와 시간도 좀 보내고 싶겠지. 직급도 적당하다. 남들보다 약간 늦지만, 큰 문제가 될 것은 아니다. 소위 행복한 삶을 몇 년 간은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몸매가, 얼굴이 안 따라줘서 꽃중년이 되긴 힘들겠지만, 최소한 적당히 스타일 유지하면서, 가족과 친척, 주변에 좋은 사람이란 평가 받으며, 곱게 늙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30대의 삶은 로맨틱 드라마처럼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 정상인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로맨스를 즐기는 현재의 상상이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극 중에서 이선균은 인생의 방향을 크게 바꿨다. 자기에게 닥친 불시의 사건-의사로서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은 사람을 뒤흔든다. 아이의 생명을 다투는 현장에서, 한 의사는 무기력감을 느끼고, 의사로서의 존재감을 잃는다.. 의사지만, 정작 아이의 목숨을 놓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과 당황스러움을 스스로 느낀다. 극은 아직 초반이지만, 이선균이 앞으로 갈 방향은 이전보다 명확해졌다. 소위, 인생의 명제-혹은 자신의 소명-를 두고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로 했으니까. 물론 모든 사람이 생명을 두고 촌각을 다툴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그것은 그것을 허락 받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자 의무이다. 그것을 깨달음으로서 이 극은 2장을 시작한다.



인턴으로 되돌아가는 이선균에게 주어지는 인터뷰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의사가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과, 직접적인 피드백-쉬운 선택을 했군-이다. 왜 쉬운 선택을 했다고 얘기했을까. 한방 의사가 왜 쉬운 선택인지.. 그 사람도 나름의 답변이 있었고, 이전의 인생에서 생각했던 계획, 목표, 행복.. 이런 것들이 있는데. 사실, 그 환경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은 잘 나가지만, 40대 이후에도 이선균이 잘 나갈까. 50대에도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의사로 기억될까. 그 나름의 도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결정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엔 거센 세상의 풍파와 명운을 같이 할 운명이기도 하다. 결코 쉽지 않았을 이선균의 선택에 나는 우선 박수를 보낸다. 원래 인생에 쉬운 선택이란 없는 것이다. 그것은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은퇴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현재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나 역시, 국내 기업을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든 주변에서는 내게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벌어질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30대, 40대 50대가 되어도 이어질 테니. 내가 보기엔 본래 쉬운 결정이란 없다.



그리고, 그 선택을 뒤집은 이선균의 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그 본질은 소명의식을 깨달음에 있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것에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로서의 역할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이 온 것이다. 무엇이 되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깨달아야 한다. 무엇이 된 다음에 깨닫는 것은 늦다. 그래서 30대에도 40대에도 50대에도, 일생의 업을 바꾸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열정은 어디를 향해있는가. 나는 컴퓨터로 박사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컴퓨터 한 대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이다. 어쩌면, 죽을때까지도 모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어 중요한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실제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폼은 나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극에서 처럼 죽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 촌각을 다투는 상황을 나는 마주칠 수 없을거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소명을 어떻게 깨닫게 될 것인가. 이것이 졸업을 앞두고, 내 인생을 결정할 중요한 남은 문제가 될 것이다.


Sunday, February 26, 2012

못 잊을 돈봉투 사건

어제 부모님이 산부인과에 다녀가셨다.
생각치못한 방문에 다소 놀래긴 했지만, 정작 놀랠 일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직접 가져오신 돈봉투 사건이다.
정치권에서 얘기 나오는 돈봉투 얘기들과 달리 내 가슴을 후벼파는 사건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어미니께서 금일봉 세개를 주셨는데, 하나는 동생, 하나는 큰이모네 막내 딸인 은정 누님, 그리고 하나는 아버지 것이었다.
특히 그 마지막 봉투는 아버지 한 달 월급을 모두 주신거라하는데,
병원비에 보태쓰라며 굳이 아내에게 직접 주시는 것을..
안받을 수도 또 선뜻 받을 수도 없는 시간이 정적으로 몇 초간 흘렀다.
어머니는 눈물이 많은 분이라, 이런 저런 일로 집에 가거나 얘기하다 보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분인데
주시며 눈시울이 빨개진 것을 먹먹한 가슴으로 받으며 울컥한 나도 볼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기 소식에 두런두런 어린시절 추억거리가 안 나올 수 없고..
어머니의 역사와 시간 속의 얘기들이.. 물론 나는 백번 쯤 들은.. 얘기들이 다시 나왔다.
누구네 아들은.. 으로 시작했던 엄친딸 엄친아들의 얘기들이 지나가고..
그 친구들의 현재 근황과, 그네들의 부모들의 사는 얘기들..
그리고 당신의 어릴 적 친구들과 그들이 꾸었던 꿈/희망들.. 그것이 자식이었기에..
그리고 당신의 희망은 또한 나였기에..

얘기를 하다 보니 산모가 수유하러 간단다.
병실을 나오며, 부모님과 저녁 요기를 하러 나갔다.
바깥 날씨는 쌀쌀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마음이 차서 그런지.
어머니와 가까이서 걸으며, 간만에 얘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얘기 내용이란 또 그런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할 거니.. 누구누구는 누구는.. 어떻고,
미래란 아직 내게 닥치지 않은 일이다.
모를 일이고.. 그렇지만, 방향이라는 것은 있는 것이다.
내가 나가는 방향이 이런쪽이고,
현재는 미래로 가는 방향성,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발판인 것이고..
지지부진 하지만, 현재는 이렇고 이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자신있게 말씀드려야 하지만,

서른 다섯의 학생으로 있는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친구도 잃었다.
동료도 잃었다.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흐릿해 지는 순간 어느 식당에 들어섰다.

동생 안부를 물으니 친구랑 부산으로 여행 갔단다.
그러면서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나보고 동생처럼 살란다.
버는 돈은 적어도 쓰는 것은 왕처럼 쓴단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모시고 어디 다니기도 하고..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늘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얘기하실 때면 가슴이 쓰리다.
가까이서 살지 못해 그런거라고 스스로 변명하고 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더구나 결혼하고 사람 구실 좀 할 줄 알았더니 몇 년 째 지지부진 하고 있는 아들 놈은
학교 다닐 때나 자랑거리였지, 여태 할 줄 아는 건 그냥 지 일 하는 것..밖에 이젠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 동생도 이제 가을이면 결혼하겠다고 준비를 한단다.
어머니 마음 한 켠이 허전 하신가 보다.
그리고, 어려워진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시골로 가신다는데..
구체적으로 얘기는 안하신다. 당신 자존심 때문이겠지.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한 얘기가 다시 나온다.
어떻게 할 거니, 끝까지 기다리기 너무 힘들구나.
나도 힘든데.. 내가 지금와서 자신감 없이 무너지면, 여기에 서 있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않나.
그리고 뒤돌이켜보니, 지나간 시간이 아깝긴 하다.
대학 들어온지 벌써 15년.
남들은 학자금대출 값고, 직장들어가 집사고 아기 낳고 즐겁게 살고 있을 시기인데..
이룬것 없이 허무하게 시간만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괜스레 우울하다.
연금으로 생활이 부족해 정년 퇴임 후에도 세컨드 직업을 구해 일하고 계시는 아버지와 겸상도 부끄럽지만.
낙향할 고향도 없는데 시골로 가신다는 얘길 하시는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또 맺힌다.
아 내 인생과 함께 부모님 희망도 이렇게 으스러져 가는 구나.

TV 에선 붕어빵이란 프로그램을 했다.
연예인 부모들의 자식들이 나와 재롱잔치하는 프로그램이다.
즐거운 프로그램인데 먹먹해진 가슴에 무언의 시간과 속으로 삭힌 눈물 밥이 넘어 간다.
인생이란게 정답은 없지만, 슬프게도 오답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잊지 못할 저녁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