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26, 2012

못 잊을 돈봉투 사건

어제 부모님이 산부인과에 다녀가셨다.
생각치못한 방문에 다소 놀래긴 했지만, 정작 놀랠 일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직접 가져오신 돈봉투 사건이다.
정치권에서 얘기 나오는 돈봉투 얘기들과 달리 내 가슴을 후벼파는 사건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어미니께서 금일봉 세개를 주셨는데, 하나는 동생, 하나는 큰이모네 막내 딸인 은정 누님, 그리고 하나는 아버지 것이었다.
특히 그 마지막 봉투는 아버지 한 달 월급을 모두 주신거라하는데,
병원비에 보태쓰라며 굳이 아내에게 직접 주시는 것을..
안받을 수도 또 선뜻 받을 수도 없는 시간이 정적으로 몇 초간 흘렀다.
어머니는 눈물이 많은 분이라, 이런 저런 일로 집에 가거나 얘기하다 보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분인데
주시며 눈시울이 빨개진 것을 먹먹한 가슴으로 받으며 울컥한 나도 볼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기 소식에 두런두런 어린시절 추억거리가 안 나올 수 없고..
어머니의 역사와 시간 속의 얘기들이.. 물론 나는 백번 쯤 들은.. 얘기들이 다시 나왔다.
누구네 아들은.. 으로 시작했던 엄친딸 엄친아들의 얘기들이 지나가고..
그 친구들의 현재 근황과, 그네들의 부모들의 사는 얘기들..
그리고 당신의 어릴 적 친구들과 그들이 꾸었던 꿈/희망들.. 그것이 자식이었기에..
그리고 당신의 희망은 또한 나였기에..

얘기를 하다 보니 산모가 수유하러 간단다.
병실을 나오며, 부모님과 저녁 요기를 하러 나갔다.
바깥 날씨는 쌀쌀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마음이 차서 그런지.
어머니와 가까이서 걸으며, 간만에 얘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얘기 내용이란 또 그런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할 거니.. 누구누구는 누구는.. 어떻고,
미래란 아직 내게 닥치지 않은 일이다.
모를 일이고.. 그렇지만, 방향이라는 것은 있는 것이다.
내가 나가는 방향이 이런쪽이고,
현재는 미래로 가는 방향성,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발판인 것이고..
지지부진 하지만, 현재는 이렇고 이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자신있게 말씀드려야 하지만,

서른 다섯의 학생으로 있는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친구도 잃었다.
동료도 잃었다.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흐릿해 지는 순간 어느 식당에 들어섰다.

동생 안부를 물으니 친구랑 부산으로 여행 갔단다.
그러면서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나보고 동생처럼 살란다.
버는 돈은 적어도 쓰는 것은 왕처럼 쓴단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모시고 어디 다니기도 하고..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늘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얘기하실 때면 가슴이 쓰리다.
가까이서 살지 못해 그런거라고 스스로 변명하고 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더구나 결혼하고 사람 구실 좀 할 줄 알았더니 몇 년 째 지지부진 하고 있는 아들 놈은
학교 다닐 때나 자랑거리였지, 여태 할 줄 아는 건 그냥 지 일 하는 것..밖에 이젠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 동생도 이제 가을이면 결혼하겠다고 준비를 한단다.
어머니 마음 한 켠이 허전 하신가 보다.
그리고, 어려워진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시골로 가신다는데..
구체적으로 얘기는 안하신다. 당신 자존심 때문이겠지.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한 얘기가 다시 나온다.
어떻게 할 거니, 끝까지 기다리기 너무 힘들구나.
나도 힘든데.. 내가 지금와서 자신감 없이 무너지면, 여기에 서 있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않나.
그리고 뒤돌이켜보니, 지나간 시간이 아깝긴 하다.
대학 들어온지 벌써 15년.
남들은 학자금대출 값고, 직장들어가 집사고 아기 낳고 즐겁게 살고 있을 시기인데..
이룬것 없이 허무하게 시간만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괜스레 우울하다.
연금으로 생활이 부족해 정년 퇴임 후에도 세컨드 직업을 구해 일하고 계시는 아버지와 겸상도 부끄럽지만.
낙향할 고향도 없는데 시골로 가신다는 얘길 하시는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또 맺힌다.
아 내 인생과 함께 부모님 희망도 이렇게 으스러져 가는 구나.

TV 에선 붕어빵이란 프로그램을 했다.
연예인 부모들의 자식들이 나와 재롱잔치하는 프로그램이다.
즐거운 프로그램인데 먹먹해진 가슴에 무언의 시간과 속으로 삭힌 눈물 밥이 넘어 간다.
인생이란게 정답은 없지만, 슬프게도 오답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잊지 못할 저녁이 된 것 같다.